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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고구마 이야기 (2019-04-12)


고구마는 지면을 따라 뻗으면서 뿌리를 내리는 덩굴식물로 덩이뿌리는 주로 타원형이다. 겉의 색은 자갈색이나 자르면 흰빛이 돌며 질이 치밀하다.

고구마는 생육기간 중의 평균온도가 22℃가 되고, 무상일수(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의 수)가 175일 범위인 지역에서 재배된다. 기온이 15℃ 이하가 되면 생육이 중지되며, 1일의 온도교차가 크고 배수가 좋은 곳이 적지이다.

예로부터 구황작물로 재배돼

우리나라에서는 첫서리가 9월 20일에 내리는 지역이면 안전한데, 특히 남부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조기 재배의 경우 수확은 7월 상순에서 8월 하순 사이에 실시되며, 보통 9월 하순부터 10월 중하순경 서리 내리기 전에 수확한다. 고구마의 저장온도는 12∼13℃가 좋으며, 저장 중 장소를 옮겨서 온도의 변화를 주면 바로 썩는다.

고구마의 성분은 수분 68.5%, 조단백(粗蛋白) 1.8%, 조지방 0.6%, 조섬유 1.3%, 회분 1.1%, 탄수화물 26.4%, 비타민 A•B•C가 소량 함유되어 있다.

특히, 탄수화물이 다량 함유돼 있어서 주식 대용으로 가능하며, 예로부터 구황작물로 재배돼왔다. 저장 중에는 수분이 감소하고 전분이 효소의 작용으로 당화하여 아주 달다.

잎자루는 나물로 식용하고, 뿌리는 그대로 쪄서 먹거나 전•튀김•엿 등으로 조리, 가공해서 먹는다. 또 알코올의 제조원료로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그 찌꺼기에서 비타민 B₁₂를 채취하기도 한다.

고구마 재배를 위한 선인들의 노력

고구마의 원산지는 열대아메리카로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하여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고구마라는 이름도 일본말 ‘고귀위마(古貴爲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63년(현종 4)에 표착했던 사람이 그곳에서 고구마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작물을 재배하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고 보고한 기록이 있다. 「해유록(海遊錄)」에도 일본 동경(東京)에서는 고구마를 구워서 판다고 했다.

이같이 1600년대 중엽부터 일본에 표착한 어민이나 통신사들을 통하여 고구마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부터이다.

「운석유고(雲石遺稿)」를 살펴보면 1763년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던 중 대마도에 들러 그 종자를 얻어 동래와 제주도에서 시험 삼아 심게 한 것이 처음이다.

실패하기는 했으나 고구마를 재배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보다 먼저 서울에 살던 이광려라는 사람에 의해 시도됐다. 그는 명나라 문헌인 「농정전서」를 통해 고구마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작물이라 믿게 되어, 우리나라에 보급시키고자 결심을 하게 됐다. 그래서 중국에 가는 사신이나 역관에게 여러 차례 고구마를 가져오라고 부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가는 조엄 일행에게 다시 종자를 부탁했으나 미덥지 않아, 강계현에게 “부산과 동래지방에는 고구마를 재배하는 농가가 있을 것이나, 그들은 그것이 고구마인 줄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곳을 뒤져서 종자를 구해다 달라”고 부탁했다.

강계현은 고구마를 한 포기 구해왔고, 이광려는 집에서 시험재배를 시작했다. 또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부탁하여 몇 포기를 더 얻어 재배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강필리는 이광려에게 자극을 받아 따뜻한 동래에서 재배시험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그 결과를 「강씨감저보」라는 책으로 펴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구마 전문서이다.

이후에도 유중림•박제가•서호수•김장순•선종한•서경창•서유구 등 많은 사람이 고구마의 재배를 주장하고, 이에 관한 저서도 남기게 됐다.

유중림은 문헌적으로 연구를 했고, 박제가는 국가에 대해 재배를 권장할 것을 주장했으며, 실제로 국가에서도 고구마 재배를 장려했다. 김장순은 남쪽 해안지방에서 고구마를 먹어보고 구황작물로 적합함을 깨닫게 돼 전국적으로 보급시킬 방도를 찾았다.

그 뒤 전라남도 보성에서 수년간 재배를 연구한 선종한을 만나 함께 서울에서 시험재배를 했다. 이 재배시험이 성공하여 남부지방에서만 재배되던 것이 서울지방까지 확대됐다. 이에 관한 연구결과가 「감저신보」이다.

서유구는 1834년 「종저보」를 저술, 간행하는 한편, 호남지방의 보급에 힘썼다. 서경창은 재배기술을 연구하여 북쪽지방의 백성들도 고구마의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구마가 전국적으로 재배되게 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이다.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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